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들은 모두 우산을 쓰고 있다. 비가 아무리 거세게 쏟아져도 그들의 피부에 와 닿는 빗방울은 정말 상대적으로 몇 방울 되지 않는 적은 양일뿐이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참 강하다.
삶이라는 하늘에서는 항상 그렇게 차가운 비가 내려오는데, 우산을 눌러 써서 몇 방울 맞지 않고 길을 걸어갈 줄 알며, 아파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내려오는 저 비를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넘어진 후에라도 자기의 우산을 고쳐들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을 줄 안다.
때로는 조금씩 더 비를 맞게 되더라도 기꺼이 우산을 나누어 주는 사람과 함께 걸을 수도 있다 ... 그 사이, 그 빗방울을 어느새 시간이 살며시 말려 둔다.
순진함이 경험의 부재로 남겨진 백지와 같은 것이라면, 순수함은 빗방울들이 마르고 난 후 조금 구겨진 듯 하면서도 더럽혀지지 않은 종이와 같다. 차가운 비를 맞아 보았음에도 조심스럽게 다시 손을 뻗어 자신의 작은 우산 너머의 세상을 느끼는 것과 같은 순수함, 그리고 손에 닿은 빗방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투명한 물방울에 비치는 세상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섬세함을, <라이너스의 담요>는 가지고 있다.
첫 곡 Signal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 고양이의 나른한 울음소리, 카세트를 열고 닫는 소리처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은 소리들로 시작된다. 이렇게 작은 일상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은 그들의 음악에 그만큼 귀가 먼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마지막 곡도 졸음 섞인 하품이 깨지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조그맣게 '잘 자.'하는 목소리를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득해 질 때 그 꿈의 그늘에 가볍게 입 맞추듯.
Christmas Train은 첫 곡에서 보랏빛 향기에 입힌 담요들의 색을 가볍게 넘어 닿는 곡으로 2001년의 합주들이 2002년 2월, 본격적으로 녹음 시도를 거칠 때 유일하게 완성된 곡이라 한다.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뒤덮어 잠시동안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드는 눈처럼 '모두 흘러가는 것, 모두 사라지는 것 ... 이젠 모두 순응이 되었어.' 라는 가사를 살짝 가리는 발랄하고 밝은 멜로디는 한 해, 한 해, 좀 더 능숙하게 그늘을 가리며 우리가 사람들에게 지어 보이는 웃음과 점점 더 많이 쓰게 되는 '괜찮아' 라는 말을 닮았다.
이어지는 담요송은 그들의 밴드 이름을 연상시키기에 의미가 깊은 곡일 듯 하다. 단어가 주는 개인적 기억에 대한 회상이나 유명 만화와 연관짓는 짐작보다는 각자가 이 곡을 듣고 느끼는 것이 그들이 그들의 밴드 이름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의 하나에 가까울 것 같다. 밴드 이름은 장난처럼 아주 쉽게 지어졌던지, 아주 오랫동안 모두 머리를 맞대어 생각해 지어졌던지, 모두가 이미 좋아하던 단어를 사용한 것이던지, 함께 시작하는 밴드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된 순간의 결정체와 같은 것이기에 '시작'이라는 바래지 않는 빛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Picnic은 동화 속 아이들이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소풍가는 발걸음처럼 모든 악기들이 연주하는 음표들이 신이 나서 조르르 가볍게 뛰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Summer has gone by 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올해 여름이 빗방울로 마지막 발자국을 지우고 있는 이 맘 때,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도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곡이다.
악기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라고 이야기하면 이런 소리를 내었을까. 그 사이로 나이나 얼굴을 떠올리기 어려운 미성의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흐른다. 앨범 재킷을 그린 사람의 목소리라는 점을 알게 되면 '그랬구나.. '하며 웃음 짓게 된다. Pub Tour로 시작한 밴드이니만큼, 그 시간을 공유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들의 앨범 리뷰를 쓰는 것은 상당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앨범의 얼굴과 목소리로 밴드를 만나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공연을 접하지 못한 청자들이 느끼는 것과 다소 비슷한 인상을 받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마 그런 청자들도 이 앨범 하나의 안과 밖이 참 잘 어울린다고 느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해맑은 첫 인상을 지닌 사람이 마음도 참 맑을 때 느끼는 고마움이랄까, 안도감이랄까 무어라고 하기 어려운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