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3월 첫 결성 이후 700회가 넘는 라이브로 국내 코어계열의 매니아들에게 실력을 검증받았던 하드코어 밴드 해머의 정규 1집 [Passion engine machine]이 발매되었다.
Deftones의 Chino를 연상시키는 파괴력 있는 보컬 남수와 헤비하면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연주를 선보이는 기타리스트 원기, 묵직하면서도 리듬감있는 베이스의 기석, 단순하면서도 귀에 잘 들어오는 리드미컬함이 돋보이는 드러밍을 선보이는 민석, 뉴메틀에 빠질 수 없는 요소임과 동시에 해머의 곡들에 세련됨을 덧붙이는 DJ 세환의 5인조로 구성된 해머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코어/얼터너티브 메틀 계열의 음악을 선보이는 밴드이다.
해머가 6년간의 언더그라운드 생활 동안 수백회의 라이브를 통해 쌓은 실력은 해머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팬이라면 누구든 긍정의 고개를 끄덕이리라. 그런 라이브에서의 매력에 덧붙여 첫번째 정규 앨범에서는 그 이상의 집중도와 해머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앨범 발매 이전의 라이브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았던 날(raw)스러운 매력은 수차례의 멤버 교체로 인해 안정화된 라인업을 통해 이루어진 각 파트들의 자연스러운 조화와, dj의 영입으로 한 층 세련되어진 곡 구성으로 한발 더 진화한듯 보인다.
뉴욕 하드코어 스타일의 스트레이트 함과 뉴메틀의 멜로디컬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이번 앨범을 통해 가장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점은 지금까지 해머는 그리고 국내 코어씬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코어계열의 장르가 가장 큰 붐업을 일궈냈던 98년 이후의 6년간의 활동을 그대로 담아내고있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다양성이다. 같은 패턴의 반복으로 인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코어계열 앨범의 단점을 해머는 이모코어의 감성적인 부분까지 흡수해 내는 광범위한 역량으로 훌륭하게 극복해내고 있다.
꽉 찬 기타리프와 포효하는 보컬의 조화가 일품인 <Awaken me>로 시작한 앨범은 화려한 스크래칭으로 서두를 알리며 파괴력 있는 연주와 짓씹는듯한 보컬이 빚어내는 멜로디컬함이 돋보이는 타이틀곡 <Passion>으로 이어진다.
어떠한 절망도 열정으로 이겨내겠다는, 밴드의 6년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가사가 깊이 와 닿는 <Passion>은 이쪽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던 팬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대중성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끊임없이 리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곡.
가장 해머다운 면모가 엿보이면서 사운드상의 훌륭함이 돋보이는 트랙 <Completly>를 지나면 록발라드 성향의 <Shades>에 놀라게 된다. 초기 해머가 구사했던 스래쉬사운드를 연상시키는 <Suffocation>과 은근히 엿보이는 포스트 그런지 스타일의 감성적인 보컬이 매력적인 <기억하기 싫은 날>은 타 장르의 팬들도 선호할만한 트랙으로 꼽을수 있겠다.
Korn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전형적인 얼터너티브 메틀 스타일의 <Loser>, 반복되는 기타리프와 보컬의 폭발적인 그로울링의 조화가 멋드러진 <theo>, 2001 하드코어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을 스트링 섹션을 새롭게 어레인지해서 다시 수록한 <각성>등 단 한 곡도 쉽게 놓치기 힘든 폭발적인 에너지를 이 앨범은 끌어안고 있다.
하지만 이쪽 계열의 어쩔수 없는 문제점인 Deftones와 Korn의 색채를 떨쳐버릴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곡 구성에 있어 해외 밴드인 Taproot와 다소 비슷한 느낌이 드는 점은 밴드가 앞으로 선보일 앨범에서는 조금 더 독창적인 사운드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6년간의 인고가 빛을 보는 경우인가, 해머의 이번 앨범은 밴드의 훌륭함에 힘을 더해주고자 국내 굴지의 음반마케팅 전문가와 클럽 관계자, 공연기획자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밴드가 앨범을 내고, 수면위로 부상한 이후로는 홍보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 해머의 앨범은 기존의 밴드들이 갖추지 못했던 막강한 프로모션의 기회를 지녔다.
그래서 이 앨범의 승패는 단순히 해머 하나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해머 이후로 등장할 수많은 밴드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해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 보인다. 아니, 무거워야만 한다. 천편일률적인 주류음악에 대한 진정한 반란은 이 순간부터 해머로부터 시작되고 있다.